청백리에 선정된 외손-최사의(崔士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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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20-05-05 08:14 조회821회 댓글0건본문
청백리에 선정된 외손-최사의(崔士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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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부 상락군 김묘(金昴)의 단소가 있는 금수단 후경]
● 최사의(崔士儀):고려 우왕2년(1376)∼단종즉위년(1452)
할아버지는 감찰대부 최재(崔宰)이고, 아버지는 의정부 참찬 최유경(崔有慶)이며, 어머니는 고려평장사(平章事) 김묘(金昴)의 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字)는 범숙(範叔)이다.\
고려 말에 음직(蔭職)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태조 2년(1393) 형조의랑(刑曹議郞)으로서 좋지 못한 행동을 한 세자빈 유씨의 죄를 청한 일로 태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고 귀양 갔다가 곧 복직되었다. 세종 6년(1424) 딸이 세종의 후궁이 되자 충좌사상호군(忠佐司上護軍)에 제수되었다. 세종 8년(1426) 공조참의에 임명되고 다음 해 이조참의를 거쳐 종2품에 오르면서 삼군부우군동지총제(三軍府右軍同知摠制)에 승진하였다.
1428년 호조참판, 1430년 경기도관찰사를 지내고 동지총제로 있으면서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를 갔다 와서 경기도관찰사 때 어떤 사건으로 파직되었다. 다시 중군총제가 되고 1432년 개성부 유후(留後)·예조좌참판·인수부윤(仁壽府尹)·한성부윤·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내고 1433년 형조좌참판으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중추부사(中樞副使)를 거쳐 정2품에 올랐고 그 해에 한성부윤이 되었고 다음 해 또 한성부윤에 임명되었으며 1437년 인수부윤으로 갔다가 세종 21년(1439) 기린이 나타난 것을 하례하기 위해 명나라에 다녀왔다.
1439년 지중추원사, 1441년 중추원 부사·판한성부사, 1442년 인수부윤을 지내고, 1444년 또 인수부윤이 되고 이후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종1품에 오르면서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승진하였다. 문종 즉위년(1450) 판돈녕부사로서 궤장(机杖)을 하사받았고 퇴임 후 사망하였다.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한 정사로 상하의 인망이 높았으며 사후에 세종조의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수염이 없고 얼굴이 노파와 같아서 세상에서 원숭이 재상이라고 하였다. 시호를 ‘양도(良度)’라 하였는데 온량하고 화락함을 좋아함이 양(良)이고 마음이 능히 도의(道義)를 절제함이 도(度)이다.
<4개 자료 모두에 수록되어 있음. 아버지 최유경도 청백리>
《출처 : 조선의 청백리222 pp371~372/문학박사 조성린/조은출판사/2012》

[외조부 상락군 김묘(金昴)의 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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