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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성(明月城) -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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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2-07-25 09:11 조회81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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暮投孤館駐行旌(모투고관주행정) 저물녘 깃발을 멈추고 객관에 머무니
古戌蒼茫枳棘平(고술창망지극평) 아득한 옛 수루 탱자나무 평온하다
都統餘威風捲海(도통여위풍권해) 도통사의 위풍은 바다를 제압하고
侍郞遺迹月隱城(시랑유적월은성) 김방경의 자취 어린 성엔 달빛 은은하다 

天低碣石陰霏合(천저갈석음비합) 하늘 밑 갈석산엔 눈비가 내리고
地壓扶桑霽旭生(지압부상제욱상) 성을 누른 부상에서 해돋이로다
八詠隱侯今不見(팔영은후금불견) 팔영시는 내가 아직 못 보았으나
碧紗籠下淚沾纓(벽사롱하루첨영) 비단초롱 밑에서 눈물을 흘리노라

도통(都統) : 최영(崔瑩, 1316~1388)
시랑(侍郞) : 김방경(金方慶, 1212~1300)
팔영(八詠) : 양나라 심약(沈約)팔영시(八詠詩)」  

이원진(李元鎭, 1594~1665)

자는 승경(昇卿), 호는 태호(太湖), 본관은 여주(驪州), 이우인(李友仁)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상의(李尙毅). 부는 판서 이지완(李志完)이며, 어머니는 이결(李潔)의 딸이다. 1615(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 등과 함께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에 풀려났다. 1630(인조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지평·교리·부수찬·장령·집의(執義) 등을 거쳐 1647년 우승지에 올랐다.1644년 교리로 있을 때 두만강의 국경을 넘어 경흥·경원·온성 등지에 침입하여 횡포를 자행하던 여진인에 대하여 조정의 명으로 그 선후책을 강구하였다. , 1648년에는 왕명으로 별시문과에서 초시를 파하려 하자, 그 부당성을 강력히 아뢰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효종 때 동래부사·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제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남만인(南蠻人) 30여 명이 제주에 표류해 오자 이들을 서울로 압송하였다. 1660(현종 1)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54년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탐라지(耽羅志)가 있다. 



출처 : 역주 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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