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 율리) 억만재(億萬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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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02 11:45 조회1,386회 댓글0건본문
억만재(億萬齋)
<김득신 묘갈명>
◎을유년(乙酉年:1625년) 안흥군(安興君)의 상을 당했다. 상을 마친(服 )후에 문장이 더욱 발전하여 선배들이 무릎을 꿇었으며 영화로운 명성이 크게 떨쳤다. -----책상자를 짊어지고 산사(山寺)에 가서 읽지 못한 책을 반드시 만 번을 읽었다. 백이전(伯夷傳)을 수십만 번을 읽었다. 이로 인해서 작은 서재의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 했다.
작성자 :김항용 작성일 : 2003/01/10 23:18 (from:220.75.185.135) 조회 : 41
괴산설화(10)-김득신편
■'억만재(億萬齋)'(괴산 능촌리 백곡 김득신 정자)의 유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문이 높은 사람은 모두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룬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글 잘하는 사람 중에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을 일일이 꼽아 볼 수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괴애(乖崖) 김수온(金守瘟)은 문을 닫고서 책만 읽으며 밖을 내다보지 않다가 대청을 내려서서 낙엽을 보고 비로소 가을임을 알았으며,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은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외우면서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는데 변소에 갔다가 나오는 걸 잊었다고 했으며, 김일손(金馹孫)은 '한유(韓兪)의 글'을 1천 번 읽었으며, 윤결(尹潔)은 「맹자(孟子)」를 1천 번 읽었으며,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은 「논어(論語)」를 2천 번 읽었으며 백호(白湖) 임재(林在)는 「중용(中庸)」을 8백 번 읽었으며, 간이(簡易) 최립(崔 )은 「한서(漢書)」를 5천 번 읽었는데 그 중에서 '항적전(項籍傳)'만 만 번 읽었으며 창주(滄洲) 차운로(車雲輅)는「주역(周易)」을 5백 번 읽었으며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은 '두시(杜詩)'를 수천 번 읽었으며,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은 '장자(莊子)'와 '유종원(柳宗元)의 글'을 1천 번 읽었다. 동명(東溟) 정군평(鄭君平)은 「사기(史記)」를 수천 번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성질이 느리고 눈해서 책을 읽는 고력을 다른 사람보다 갑절 들인다.「사기(史記)」,「한서(漢書)」와 한유(韓兪), 유종원(柳宗元)의 글은 모두 베껴서 만 여 번이나 읽었고, 그 중에서 '백이전(伯夷傳)'을 가장 좋아하여 그것은 1억1만3천 번이나 읽어 드디어 내 방을 '억만재(億萬齎)'라 이름을 짓고서 절귀 한 수를 지었다.
진?한?당?송의 글을 두루 찾아서
입에서 침을 날리며 일만 번 읽었네
백이전의 기괴한 문체 가장 좋아하여
훨훨 달리는 기운 구름 넘어 올라가네
지난 경술년(庚戌年 ◀1670년)에 큰 가뭄이 들어 팔도에 흉년이 들어서 그 이듬해에(◀1671년) 굶주림과 염병으로 서울과 시골에 쌓인 시체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금년에 죽은 사람 수와 그대가 책 읽은 수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많은가?" 하였다. 이것은 내가 책을 되풀이하여 많이 읽은 것을 놀린 것이다.
<종남총지(終南叢志)>(김득신의 수필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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