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김씨보의 오류 – 05 김진의 배위는 용궁전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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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9-02-12 05:09 조회1,367회 댓글0건본문
원주김씨보에는 7세 김진(金瑨)은 1270년(원종 11년)에 태어나 1335년(충숙왕 4년)에 사망하고, 배위 용궁전씨(龍宮全氏)는 1277년(충렬왕 3년)에 태어나 1338년(충숙왕 7년)에 사망한 것으로 적혀 있다. 용궁전씨의 친정아버지는 전원계(全元系), 할아버지는 전신(全信), 증조부는 전경손(全慶孫), 외할아버지는 광산인(光山人) 김지숙(金之淑)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서(史書)나 문집 등에서 이들을 찾아볼 수 없는데, 천안전씨보에 전신(全信)이 실려 있기는 하다. 최해(崔瀣)의 『졸고천백』 등에 <전백헌 묘지(全栢軒墓誌)>가 수록돼 있는데, 바로 천안인(天安人) 전신(全信)의 묘지명이다. 이 묘지명은 1339년(충숙왕 복위 8년)에 최해(崔瀣)가 지었는데, 묘지명에 의하면 전신은 1276년(충렬왕 2년)에 태어나 1339년(충숙왕 복위 8년)에 사망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전승(全昇), 할아버지는 전인량(全仁亮), 증조부는 전세주(全世柱), 어머니는 최자(崔滋)의 손녀인 제안군(齊安郡) 해주최씨로 원주인(原州人) 김진의 배위와 혈연 관계가 없다.
먼저 『씨족원류』의 원주김씨 김진(金瑨) 항목(254쪽)을 살펴보자. “軍簿尙書宰臣。恭愍乙未以大護軍。入元立大功。室判書慶州金天系女。(군부상서 재신이다. 공민왕 을미년에 대호군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다. 배위는 판서 경주인 김천계의 딸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 내용은 고려사 세가 1355년(공민왕 4년) 11월에 김진(金瑨)이 원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5월에 귀국한 사실을 적은 것이다. 그런데 원주김씨보에는 김진이 이보다 앞선 1335년(충숙왕 4년)에 사망한 것으로 적혀 있다. 앞에서 살펴본 김자(金資)의 경우처럼 사서(史書)에 나타난 행적과 원주김씨보의 생몰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여기서도 나타난 것이다.
■ 고려사 세가 공민왕(恭愍王) 4년 11월
十一月庚戌。遣定原君鈞大護軍金瑨如元。獻方物。
경술일(29일)에 정원군(定原君) 왕균(王鈞)과 대호군(大護軍) 김진(金瑨)을 파견해 원나라에 가서 토산물을 바치게 하였다.
■ 고려사 세가 공민왕(恭愍王) 5년 5월
壬午。定原君鈞大護軍金瑨。奉賜王衣酒。還自元。
임오일(3일)에 정원군(定原君) 왕균(王鈞)과 대호군(大護軍) 김진(金瑨)이 황제가 왕에게 하사한 의복과 술을 가지고 원나라에서 돌아왔다.
또한 『씨족원류』에서는 김진의 배위를 “경주김씨 김천계의 딸(慶州金天系女)”이라 하였는데, 원주김씨보에는 “용궁전씨 전원계(全元系)의 딸”이라 적어 놓았다. 『씨족원류』 글자체를 보면 ‘金天系(김천계)’가 ‘全元系(전원계)’와 비슷해 보이는데, 혹시 이를 잘못 판독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김천계와 그 선대는 경주김씨 대안군파의 소파인 문간공파에 속하는 인물들로 김태서(金台瑞)의 후손이다. 이들은 후에 전주김씨(全州金氏)로 분적한 계통인데, 고려조의 문벌가로 자리잡아 그 선대와 후손들이 대부분 고려사 세가와 열전에 행적이 실려 있다.
원주김씨보에 배위의 외조부로 기록된 광산김씨 김지숙(外光山金之淑)은 고려사 김지숙(金之淑)전에 비교적 자세한 행적과 생몰년이 소개돼 있다. 열전에는 김지숙이 1310년(충선왕 2년)에 향년 73세로 사망했으며, 아들은 김인근(金仁瑾)과 김인연(金仁沇)이고, 딸 둘은 집안이 가난해 혼인하지 못하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지숙은 1238년(고종 25년)에 태어나 1310년(충선왕 2년)에 사망했는데, 원주김씨보에는 김진의 배위가 1277년(충렬왕 3년)에 출생했다고 적혀 있으니 외조부보다 무려 50년이나 앞서 태어난 모순이 발생했다.
광산김씨대종회 홈페이지(http://www.kwangsankim.or.kr/)의 ‘광산인 인물세고’에는 ‘15세 김지숙(金之淑)’으로 적혀 있는데, 광산김씨 전자족보(http://kwangsankim.co.kr/index.php)에 김지숙의 자녀로 1남 3녀가 수록돼 있다. 그 중 둘째 딸이 경주인 판서 김천계(金天系)에게 출가하였으며, 외손녀사위로 함양인(咸陽人) 박우(朴玗), 합천인(陜川人) 이운기(李云起), 원주인(原州人) 김진(金晉)이 명기돼 있다. 다만, 비구니가 된 두 딸이 환속하여 혼인한 것인지, 그 외에 딸이 더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또한 경주김씨 대안군파 문간공파보(1999년)에는 김봉모(金鳳毛) → 김태서(金台瑞) → 김경손(金慶孫) → 김신(金信) → 1子 김천익(金天益), 2子 김천서(金天瑞), 3子 김천계(金天系), 4子 김자창(金自昌), 5子 김자연(金自延)으로 이어지는 계대가 수록돼 있는데, 김천계의 배위가 명기돼 있지는 않다. 전주김씨보 역시 대동소이하다. 『씨족원류』 경주김씨(185쪽) 항목 역시 대동소이한데, 김천계는 ‘판서(判書)’로 적고 배위는 실려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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