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 <전체 끝>
페이지 정보
김윤식 작성일19-02-12 19:27 조회897회 댓글0건본문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문
원주김씨보의 생몰년 기록은 그 오차가 너무 심하다. 이 때문에 면주에 실린 행적과 생몰년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이 발견된다. 원주김씨보가 처음 간행된 것은 1808년(순조 8년) 무진보(戊辰譜)인데, 근래에 족보를 간행할 때 생몰년을 서기(西紀)로 표기하면서 간지(干支)를 잘못 환산하거나 시조와의 계대 상 연결을 위해 생몰년을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윤간(金允侃)의 출생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제로는 원주김씨보 기록보다 120~130년 정도 늦은 1250년~1260년 무렵이다. 자연히 그 후손들도 출생년을 100여 년 정도씩 내려잡아야 하는데, 여말선초에 이르면 내외파(內外派)로 기록된 인물들의 생몰 연대가 사서(史書)나 비지문(碑誌文) 등의 기록과 점차 맞아가기 시작한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참고자료가 많아지고 내용도 한층 확실해졌기 때문인 듯한데, 11세 김연지(金連枝)의 경우에는 『조선왕조실록』 1471년(성종 2년) 10월 7일조 <행중추부지사 김연지의 졸기>에 “무자년(1468년, 세조 14년)에 정헌대부에 오르고, 기축년(1469년, 예종 원년)에 숭정대부를 가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졸하니 나이가 76세이다.”라고 하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연지는 1396년(태조 5년)에 태어나 1471년(성종 2년)에 사망한 것으로 비록 생일은 다르지만 생몰년은 원주김씨보 기록과 일치한다.
김윤간의 출생년(1250년~1260년)부터 김연지의 출생년(1396년)까지의 기간은 136~146년간이다. 이 기간을 김윤간부터 김연지까지의 계대 수(9代)로 나누면 평균 15~16년마다 아들이 태어난 것이 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조종운(趙從耘)의 견해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⑭ 此世系與安東金氏相混不可信 盖金允侃爲權子與壻 安東金資爲允侃婿 而此作子 且資之子曰千義 此云義錯亂可愕 而世代數亦太多
이 세계(世系)는 (新)안동김씨와 서로 섞여 있어서 믿을 수 없다. 김윤간(金允侃)은 권자여(權子與)의 사위이고, (新)안동인 김자(金資)는 김윤간(金允侃)의 사위인데 여기서는 아들로 되어 있다. 또 김자(金資)의 아들을 김천의(金千義)1)라고 하는데, 이는 김의(金義)가 뒤섞여 혼란스럽고 놀랍다. 그리고 세대 수 역시 너무 많다.
조종운의 이러한 주장은 원주김씨 계대에 신안동김씨 계대가 섞여 있어 대수(代數)가 너무 많은데, 원주김씨 김윤간의 사위가 바로 신안동김씨 김자(金資)의 장인이므로 신안동김씨 계대와 겹치는 김자(金資) → 김의(金義) → 김득우(金得雨)는 원주김씨 계대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씨족원류』 원주김씨(254쪽) 항목의 김득우(金得雨) 면주에 “판충주목사이다. 목사인데, 통례문 판각이라고도 한다. 배위는 참의 평산인 신수(申璲)의 딸이다.(判忠州牧使 牧使一通禮門判閣 室參議平山申璲女)”라고 적은 다음에 “⑤의심스러운 곳이다.(有可疑處)”라고 한 듯하다.
조종운과 같은 견해는 안동권씨 신사보(1701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신사보 화자장(火字張)에 신안동김씨 김자를 김윤간의 맏사위로 기록하고 그 아들로 김의(金義)를 적어 넣었다. 아울러 김자의 면주에 “녹사이다. 판도판서에 추증되었다. 안동인이다. 달성보(達城譜)에 김윤간의 아들로 적은 것은 오류이다.(錄事 贈版圖判書 安東人 達城譜 以允侃子書誤矣)”라고 하였다. 신사보 범례에 “이른바 달성보(達城譜)는 곧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이 편찬한 것이다.(所謂達城譜 卽徐四佳居正所撰也)”라고 밝혔듯이 달성보(達城譜)는 서거정이 외손으로서 간행사업에 큰 역할을 한 안동권씨 성화보를 일컫는 말이다. 신사보(1701년)는 조종운(1607년∼1683년)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행되었는데, 조종운이나 그의 숙부 조속(趙涑)의 견해를 참고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견해의 문제점은 김득우 호구자료에 신안동김씨 김자의 장인인 김윤간은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다는 점이다. 안동권씨 신사보에는 김윤간을 원주인(原州人)이라 하고, 김득우의 경우에는 처가인 평산신씨파보(1923년)에 원주인(原州人)으로 적혀 있다. 참고로 신수(申璲)는 신효창(申孝昌)의 아버지로, 김득우는 신효창과 처남 매부 사이가 된다.
이 같은 모순은 원주김씨 김윤간(金允侃)과 신안동김씨 김윤간(金允侃)이 동일인인가, 단순히 한자만 같은 동명이인인가 하는 문제로 다시 귀착되고 만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주김씨 김윤간의 출생년은 1250년~1260년 무렵이다. 신안동김씨 김자의 장인 김윤간은 김득우 호구자료에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고, 1390년에 김득우의 나이가 59세라 하였으므로 김득우의 출생년은 1342년이 된다. 한 세대를 대략 25년 정도로 잡으면 김득우의 아버지 김의는 출생년이 1317년, 할아버지 김자는 1292년, 김자의 장인 김윤간은 1267년이 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이름뿐만 아니라 출생년까지 흡사하여 단순히 동명이인으로 간과하기는 어렵다.
<각주>
1) 김천의(金千義) : 『씨족원류』 함창김씨(255쪽, 257쪽) 항목에 김구(金龜)의 사위로 김천의(金千義)가 실려 있다. 조종운이 적어 놓은 글귀는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