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에 선정된 선조님 5분-김연수(金延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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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20-05-01 07:30 조회866회 댓글0건본문
청백리에 선정된 선조님 5분-김연수(金延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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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할아버지 직제학 김맹헌(金孟獻) 묘 : 김연수공 묘는 공주 정안에서 실전됨)
● 김연수(金延壽):?~중종10년(1515)
할아버지는 김맹헌(金孟獻)이고, 아버지는 의영고직장(直長) 김자정(金自埥)이며, 어머니는 계유정난 시 세조에게 죽임을 당한 우의정 김종서(金宗瑞)의 딸이다. 본관은 안주[安州, 안동(安東)의 오기로 저자에게 정정하여 줄 것을 요첨함.]이고, 자(字)는 이강(而康)이다.
성종 11년(1480)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성종 14년(1483)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연산군 3년(1497) 성균관전적을 지냈고 그 후 청풍군수로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이 전부터 매년 5-6월에 나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우상을 모시고 제사를 크게 지내는 것을 보고 남녀 무당과 그 일에 앞장선 사람을 잡아다가 곤장을 치고 나무로 만든 우상을 불태워 버렸더니 그 후부터는 요사스러운 제사가 없어졌다.
중종 2년(1507) 강릉부사로 근무중 강원도도사(都事) 유부(柳溥)와 말다툼을 한 후 벼슬을 버리고 떠날 때 백성들이 길을 막고 만류하였지만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후에 백성들이 유부가 지나는 것을 보고 “우리의 태수를 내치고 어찌 우리를 살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후 내섬시정·종성부사·충청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성품이 매우 청백하고 굳은 절개가 있었으며 간소하였다. 일찍이 장흥부사로 부임하는 길에 공주에서 잘 때 목사가 술과 안주를 가지고 방문하였는데 이튿날 모두 반환하니 목사가 크게 부끄러워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어떤 고난을 당해도 변하지 아니하고 끝내 지켜나가는 굳은 절개를 가졌다고 일컬었는데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음.>
《출처 : 조선의 청백리222 pp84~85/문학박사 조성린/조은출판사/2012》

[외할아버지 우의정 김종서(金宗瑞) 장군 묘 : 공주 정안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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