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간(金允侃) : 신안동김씨보와 씨족원류의 오류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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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19-02-02 23:06 조회1,072회 댓글0건본문
김윤간(金允侃) : 신안동김씨보와 씨족원류의 오류 01
김윤간(金允侃) 역시 신안동김씨(김선평 후손)와 원주김씨(김거공 후손)는 물론 안동권씨에서도 나타난다. 신안동김씨에서는 김자(金資)의 장인으로, 원주김씨에서는 시조 김거공(金巨公)의 아들로, 안동권씨에서는 권자여(權子與)의 사위로 기록돼 있다.
① 김자(金資)의 장인 김윤간(金允侃) : 신안동김씨 감찰공파 대계가승보(1990년)
② 김거공(金巨公)의 아들 김윤간(金允侃) : 원주김씨대동보(1982년)
③ 권자여(權子與)의 사위 김윤간(金允侃) : 안동권씨 복야공파세보(1980년)
신안동김씨보의 오류
근래에 간행된 신안동김씨보에는 김자(金資)의 배위를 상락김씨(上洛金氏)로 적고 있는데, 상락김씨는 곧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 가문의 별칭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김득우 호구자료에는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다.
이 내용이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것이 바로 신안동김씨 가승기략(1761년)과 신안동김씨 계사보(癸巳譜 : 1833년) 등의 보책이다. 이 보책에는 김자(金資)의 배위가 아래와 같이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적혀 있다.
김득우 호구자료는 관문서(官文書)로 오늘날의 호적대장 또는 주민등록 등본과 유사한 공문서(公文書)이다. 이 호구자료에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엄연히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는데, 근래의 신안동김씨보에는 상락김씨로 적어서 김윤간(金允侃)을 상락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만든 오류가 나타났다. 이는 짐작컨대 김자(金資)의 본관도 안동, 그 배위(김윤간의 딸)도 안동, 배위의 외조부(김윤간의 장인 金應孚)도 안동으로 본관이 모두 같은 점을 꺼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고려 초기에는 족내혼이 빈번했다. 심지어 고려 왕실에서는 남매간에 혼인하기까지 하였다.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안동(安東)이기는 해도 현재로서는 상락공 김방경 후손인 안동김씨인지, 아니면 태사 김선평 후손인 신안동김씨인지 확정지을 수 없다. 김자(金資)의 증조부 김여기(金呂基)는 김여중(金呂重)과 형제간인데, 돌림자는 ‘呂’자이다. 김윤간(金允侃)의 조부 김여황(金呂黃) 역시 ‘呂’자를 쓰고 있는데, 같은 항렬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의 신안동김씨보를 근거로 훗날 김윤간(金允侃)의 계대를 상락공 후손으로 단정짓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
김윤간(金允侃) 역시 신안동김씨(김선평 후손)와 원주김씨(김거공 후손)는 물론 안동권씨에서도 나타난다. 신안동김씨에서는 김자(金資)의 장인으로, 원주김씨에서는 시조 김거공(金巨公)의 아들로, 안동권씨에서는 권자여(權子與)의 사위로 기록돼 있다.
① 김자(金資)의 장인 김윤간(金允侃) : 신안동김씨 감찰공파 대계가승보(1990년)

② 김거공(金巨公)의 아들 김윤간(金允侃) : 원주김씨대동보(1982년)


③ 권자여(權子與)의 사위 김윤간(金允侃) : 안동권씨 복야공파세보(1980년)

신안동김씨보의 오류
근래에 간행된 신안동김씨보에는 김자(金資)의 배위를 상락김씨(上洛金氏)로 적고 있는데, 상락김씨는 곧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 가문의 별칭이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김득우 호구자료에는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다.
戶前中顯大夫典農正金得雨年五十九本安東……祖承仕郞衛尉注簿同正資祖妻父升仕郞都染令同正金允侃本安東 |
이 내용이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반영된 것이 바로 신안동김씨 가승기략(1761년)과 신안동김씨 계사보(癸巳譜 : 1833년) 등의 보책이다. 이 보책에는 김자(金資)의 배위가 아래와 같이 안동김씨(安東金氏)로 적혀 있다.


김득우 호구자료는 관문서(官文書)로 오늘날의 호적대장 또는 주민등록 등본과 유사한 공문서(公文書)이다. 이 호구자료에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엄연히 안동(安東)으로 적혀 있는데, 근래의 신안동김씨보에는 상락김씨로 적어서 김윤간(金允侃)을 상락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만든 오류가 나타났다. 이는 짐작컨대 김자(金資)의 본관도 안동, 그 배위(김윤간의 딸)도 안동, 배위의 외조부(김윤간의 장인 金應孚)도 안동으로 본관이 모두 같은 점을 꺼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고려 초기에는 족내혼이 빈번했다. 심지어 고려 왕실에서는 남매간에 혼인하기까지 하였다.
김윤간(金允侃)의 본관이 안동(安東)이기는 해도 현재로서는 상락공 김방경 후손인 안동김씨인지, 아니면 태사 김선평 후손인 신안동김씨인지 확정지을 수 없다. 김자(金資)의 증조부 김여기(金呂基)는 김여중(金呂重)과 형제간인데, 돌림자는 ‘呂’자이다. 김윤간(金允侃)의 조부 김여황(金呂黃) 역시 ‘呂’자를 쓰고 있는데, 같은 항렬일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의 신안동김씨보를 근거로 훗날 김윤간(金允侃)의 계대를 상락공 후손으로 단정짓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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